앞으로는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해도 언제 사용했느냐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질 수 있다.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요금을 낮추고 사용량이 몰리는 시간에는 더 비싸게 받는 ‘계시별 요금제’가 가정용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기를 적게 쓰면 싸고 많이 쓰면 비싸지는 누진제가 중심이지만, 앞으로는 사용량에 시간이라는 기준이 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가정용 전기요금이 밤이나 낮이나 같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싸게 하고 부족한 시간에는 비싸게 책정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제주도에서 시작한 탄력요금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설명했다. 아직 전국 시행 시기와 구체적인 요금표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전기요금 체계를 단순한 인상과 동결이 아니라 ‘사용 시간에 따른 차등화’ 방향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시간대별 요금제가 필요한 이유는 전기의 독특한 성격에 있다. 전기는 일반 상품처럼 대량으로 쌓아두기 어렵다. 한낮에 태양광 발전량이 많아 전력이 남더라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출력 제어가 필요하고, 퇴근 이후 냉난방기와 조리기구 사용이 한꺼번에 늘면 부족한 전력을 채우기 위해 추가 발전기를 가동해야 한다. 전력 사용이 특정 시간에 집중될수록 발전소와 송전망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고 그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현재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에는 이미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구조가 적용되고 있다. 한전의 요금 체계에서는 하루를 경부하·중간부하·최대부하 시간대로 나누고 전력 수요가 낮은 심야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을 적용한다.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도 2021년 9월부터 제주도에서 선택제로 운영되고 있다. 스마트계량기인 AMI가 시간대별 사용량을 측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전국으로 확대되더라도 처음부터 모든 가구에 강제로 적용되기보다는 기존 누진제와 시간대별 요금제 가운데 소비자가 선택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전기 사용을 저렴한 시간대로 옮길 수 있는 가구라면 시간대별 요금제가 유리하지만, 생활 패턴을 바꾸기 어려운 가구에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단순히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것만큼 ‘언제 사용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인 A씨 가정은 저녁 7시 이후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 에어컨을 동시에 사용한다. 만약 이 시간이 최대부하 시간으로 분류되고 요금이 높게 책정된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 패턴에서는 요금이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의 예약 기능을 이용해 심야에 작동시키고, 전기차도 밤에 충전하면 전기 사용량이 같더라도 요금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긴 고령층이나 영유아 가구, 재택근무자에게는 계산이 더 복잡하다. 이들은 낮 시간에도 냉난방과 가전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전력이 남아도는 한낮의 요금이 낮게 정해진다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몰리는 시간이 높은 요금 구간으로 지정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시간대 구분과 가격 차이가 어떻게 설계되는지에 따라 같은 생활 형태도 결과가 달라진다.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를 보유한 가구는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요금이 저렴한 심야에 전기차를 충전하고 비싼 시간에는 충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용 배터리가 보급되면 싼 시간에 저장한 전기를 비싼 시간에 사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세탁기, 건조기, 온수기, 에어컨이 전기요금을 확인해 자동으로 작동 시간을 조절하는 스마트 가전 시장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시간대별 요금제가 모든 가구의 전기요금을 낮춰주는 제도는 아니다. 가격 신호를 보고 사용 시간을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될 수 있다. 밤에 세탁기를 돌리기 어려운 공동주택 거주자, 정해진 시간에 냉난방이 필요한 취약계층, 스마트 가전을 구매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선택지가 제한된다. 정부가 제도를 확대하려면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와 필수 사용량 보호, 충분한 요금 비교 정보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스마트계량기 보급도 중요한 조건이다. 기존 계량기는 한 달 동안 사용한 전력량만 확인하지만 AMI는 시간대별 사용량을 측정하고 원격으로 전송할 수 있다. 소비자가 자신의 사용 패턴을 확인하지 못한 채 요금제만 선택하면 어느 쪽이 유리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한전은 시간별 사용량과 예상 요금을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최소 몇 개월 동안 기존 요금과 새 요금을 함께 보여주는 절차도 필요하다.
전기요금 개편을 곧바로 전면적인 요금 인상으로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시간대별 요금제의 목적은 전체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 전력 수요를 분산하는 데 있다. 다만 최대부하 시간의 요금이 크게 오르고 소비자가 사용 시간을 옮기지 못한다면 체감상 요금 인상과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전력이 남는 시간의 할인 폭이 충분하고 선택권이 보장된다면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가구에는 절약 수단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핵심은 세 가지다. 적용이 의무인지 선택인지, 어느 시간이 비싼 구간으로 정해지는지, 기존 누진제와 비교해 실제 요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다. 구체적인 요금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특정 가구가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가정용 전기요금의 기준이 ‘얼마나 썼는가’에서 ‘언제 썼는가’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전기요금을 아끼는 방법도 사용량을 줄이는 것에서 생활 시간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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