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유가·증시는 흔들렸는데 비트코인은 버텼다…‘디지털 금’이 된 것일까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다시 격화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커지자 브렌트유는 7월 20일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아시아 증시는 경계심이 커졌고 미국과 유럽 기술주도 전쟁과 고평가 부담에 압박을 받았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같은 시간 6만4000달러 선을 유지하며 이더리움과 함께 소폭 상승했다.

전쟁이 발생하면 비트코인도 주식처럼 급락한다는 기존 인식과는 다른 장면이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지정학적 충격을 견디면서 금과 비슷한 안전자산, 이른바 ‘디지털 금’으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다시 등장했다. 국가가 마음대로 발행량을 늘릴 수 없고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세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는 특성이 전쟁 상황에서 부각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움직임만으로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이 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은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다시 높아진 7월 중순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한때 6만2600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졌을 때 주식과 함께 매도된 것이다. 이후 가격이 6만4000달러 위로 회복했지만 전쟁이 시작된 순간부터 계속 상승한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이 ‘버텼다’는 표현은 가격이 오르기만 했다는 의미보다 충격 이후 낙폭을 빠르게 회복했다는 뜻에 가깝다.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추가 급락이 나타나지 않았고, 20일 아시아 시장 초반에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각각 약 0.2% 상승했다. 같은 시점 브렌트유는 3% 이상 급등하고 달러가 강세를 보였다. 시장의 공포가 확대됐지만 비트코인 매도세가 유가 상승 폭만큼 커지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살펴볼 변화는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투자자의 구성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개인투자자와 가상자산 전문 업체가 시장의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현물 ETF, 자산운용사, 기업 재무자산을 통해 기관 자금이 들어와 있다.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장기 보유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자금이 늘어나면 단기 투기자금이 빠져나가더라도 시장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공급 구조도 금과 비교되는 이유다. 비트코인의 최대 발행량은 2100만개로 제한돼 있다. 전쟁 비용과 경기 부양을 위해 각국이 통화와 국채 발행을 늘리면 법정화폐의 구매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이때 공급량을 정부가 변경할 수 없는 비트코인이 통화가치 하락에 대비하는 자산으로 선택될 수 있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기 쉽다는 점도 전쟁과 금융제재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 금은 보관과 운송에 비용이 들고 금융기관에 맡긴 자산은 계좌 동결이나 자본 통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비트코인은 개인이 지갑의 비밀키를 관리하면 특정 은행의 영업시간이나 송금망에 의존하지 않고 이전할 수 있다. 통화가 급락하거나 해외송금이 막힌 국가에서 가상자산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이 가격 안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금은 오랜 기간 중앙은행과 기관투자자가 보유해온 자산이며 시장 규모와 유동성이 크다. 비트코인은 24시간 거래되고 레버리지 비중이 높아 작은 충격에도 강제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전쟁이 확대되면 안전자산이어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현금 확보를 위한 매도로 먼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2026년 3월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시작됐을 때 비트코인은 약 6만6500달러까지 하락하며 안전자산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초 대비 하락 폭도 상당했다. 반면 이후 충격을 흡수하고 반등하는 과정에서는 전통적인 기술주보다 강한 회복력을 보여줬다. 동일한 전쟁에서도 시점에 따라 위험자산과 대체자산의 성격이 번갈아 나타난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또 다른 이유는 전쟁 위험이 이미 가격에 반영됐기 때문일 수 있다. 중동 충돌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가 수개월 동안 이어진 만큼 투자자는 새로운 전쟁이 갑자기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알려진 위험이라면 추가 매도 규모가 줄어든다. 이것을 안전자산 수요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주식시장 하락에도 전쟁 외 요인이 섞여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최근 기술주와 반도체주는 AI 투자 지속성, 높은 기업가치, 실적 부담 때문에 조정을 받았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월 고점에서 약 20% 떨어졌다. 증시 하락을 모두 전쟁 탓으로 보고 비트코인과 단순 비교하면 비트코인의 방어력이 실제보다 과장될 수 있다.

국제유가가 비트코인에 미치는 영향도 한 방향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유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고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인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비트코인과 성장주의 매력은 낮아질 수 있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해 법정화폐 가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공급이 제한된 비트코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같은 유가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악재, 장기적으로는 매수 논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시장에서 확인된 것은 비트코인이 완전한 안전자산이 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과거보다 지정학적 충격에 덜 무너질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금처럼 위기 때마다 안정적으로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주식과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고위험 자산이라고만 설명하기도 어려워졌다. 기관 보유 확대와 제한된 공급, 세계적인 거래망이 비트코인의 성격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하루 가격보다 여러 시장의 동시 움직임이다. 전쟁이 격화할 때 비트코인이 금과 함께 오르는지, 나스닥과 함께 떨어지는지 비교해야 한다. 현물 ETF의 자금 유입과 유출, 거래소로 이동하는 비트코인 수량, 선물시장의 레버리지와 강제청산 규모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격만 버텨도 과도한 레버리지가 쌓였다면 작은 악재가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제 원유 수송량과 브렌트유 가격도 핵심 변수다. 해협을 지나는 선박이 줄어 유가가 계속 상승하면 인플레이션과 금리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휴전이나 항로 정상화가 확인되면 유가가 하락하면서 위험자산이 동시에 반등할 수 있다. 이 경우 비트코인 상승이 디지털 금 수요 때문인지 단순한 위험자산 회복인지 구별하기 더 어려워진다.

비트코인은 이번 전쟁에서 무너지지 않았지만 아직 금의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디지털 금이 됐다’고 선언할 단계보다 안전자산으로 변하는 과정을 시험받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앞으로 전쟁이 확대되고 증시가 추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비트코인이 독립적인 흐름을 유지한다면 디지털 금 주장은 더 강해질 수 있다. 반대로 기술주와 함께 급락한다면 이번 방어력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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