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에서 짧은 시간에 가격을 끌어올린 뒤 개인투자자에게 물량을 떠넘기는 시세조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불공정거래 40여건을 조사해 약 30건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통보했다고 밝혔다. 관련 혐의자는 25명이며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은 약 14억원이었다.
적발된 사건 가운데 부당이득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사건은 8건, 50억원을 넘긴 대형 사건도 한 건 있었다. 시세조종과 부정거래 사건에는 불법 이익의 125~165%에 해당하는 과징금도 부과됐다. 가상자산 시장의 가격 급등이 모두 투자자의 자발적인 거래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된 것이다.
대표적인 수법은 ‘경주마’ 시세조종이다. 조종 세력은 거래량이 적고 시가총액이 작은 여러 종목 가운데 가격을 움직이기 쉬운 코인을 골라낸다. 이후 특정 시점에 자금을 집중해 시장가 매수 주문을 쏟아낸다. 가격과 거래량이 동시에 급등하면 투자자는 새로운 호재가 발생했거나 큰손이 들어왔다고 판단해 추격 매수에 나선다.
조종 세력은 목표 가격에 도달하면 미리 매집한 물량을 개인투자자에게 팔아 이익을 실현한다. 매수를 멈추는 순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던 수요가 사라지면서 가격이 급락한다. 뒤늦게 매수한 투자자만 빠져나오지 못한 채 손실을 떠안는다. 경주마가 짧은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여러 종목을 옮겨 다니며 같은 수법을 반복한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들어 평소 거래대금이 1억원에 불과한 코인이 한 시간 만에 30% 오르고 거래대금이 20억원으로 늘었다고 가정해 보자. 투자자 A씨는 거래량 급증을 상승 신호로 보고 1000만원을 매수한다. 그러나 가격 상승이 조종 세력의 집중 주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들이 물량을 처분하는 순간 가격은 출발점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A씨가 확인한 거래량은 시장의 관심이 아니라 매도할 상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던 셈이다.
‘가두리’는 거래소의 입출금이 중단된 상황을 악용한다. 지갑 점검이나 네트워크 장애 등으로 특정 코인을 다른 거래소에서 가져오거나 내보낼 수 없으면 거래소마다 가격 차이가 벌어진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싼 거래소에서 사서 비싼 거래소에 파는 차익거래가 가격 차이를 줄이지만 입출금이 막히면 이런 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조종 세력은 거래소 안에 갇힌 제한된 물량을 이용해 가격을 끌어올린다. 다른 거래소보다 가격이 크게 오르면 투자자는 해당 종목에 특별한 호재가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입출금이 재개돼 외부 물량이 들어오면 가격 차이가 빠르게 사라진다. 높은 가격에 매수한 사람은 정상 가격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손실을 입는다.
밈코인을 발행한 뒤 SNS에 허위 호재를 퍼뜨리는 부정거래도 적발됐다. 개발 계획이나 사업 제휴가 확정된 것처럼 홍보해 투자자를 모은 뒤 발행자가 보유 물량을 한꺼번에 매도하는 방식이다. 유명인의 이름이나 유행하는 문구를 사용하면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빠르게 확산된다. 가격이 급등했다는 사실 자체가 다시 홍보 자료가 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매수에 참여한다.
초단기 주문을 반복해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도 있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소량의 시장가 주문을 계속 제출하면서 동시에 높은 가격의 매수 주문을 쌓아 올린다. 실제 투자 수요가 늘지 않았는데도 체결 횟수와 거래량이 증가한다. 일반 투자자는 호가창과 거래량만 보고 강한 매수세가 들어온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개인투자자는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우선 가격 급등과 함께 거래소 입출금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살펴야 한다. 입출금 중단 상태에서 특정 거래소 가격만 크게 오른다면 호재보다 가두리 가능성을 먼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여러 거래소의 가격을 비교하면 비정상적인 가격 차이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거래량이 갑자기 늘어난 종목은 상승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프로젝트나 거래소의 공식 발표 없이 SNS와 커뮤니티의 소문만 확산된다면 추격 매수를 멈추는 편이 안전하다. “곧 대형 거래소에 상장된다”, “유명 기업과 제휴한다”는 주장에는 원문과 발표 주체가 있어야 한다. 캡처 이미지나 출처 없는 게시물은 증거가 아니다.
호가창에 큰 매수 주문이 쌓였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체결 전에 취소할 수 있는 주문은 실제 수요가 아닐 수 있다. 대량 주문이 가격이 움직일 때마다 사라지거나 같은 규모로 반복해서 나타난다면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주문일 가능성이 있다. 짧은 시간에 수십 퍼센트 상승한 저유동성 코인은 매수보다 매도할 때 문제가 더 커진다. 팔려는 순간 매수 호가가 사라지면 화면에 표시된 가격으로 현금화할 수 없다.
이번 적발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실제 조사와 처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거래가 24시간 진행되고 여러 거래소와 개인 지갑을 오가는 시장 특성상 모든 조작을 사전에 막기는 어렵다. 해외 계정과 탈중앙화 거래소를 이용하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금융당국은 향후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에 불공정거래 계좌 지급정지와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상 주문과 반복 거래를 빠르게 탐지하는 시장감시 체계도 강화할 계획이다. 다만 처벌은 피해가 발생한 뒤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방어선은 급등한 가격을 호재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거래량이 늘었다는 사실보다 누가 어떤 이유로 거래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입출금이 막힌 종목, 공식 발표 없이 SNS에서만 화제가 된 코인, 짧은 시간에 호가와 거래량이 폭증한 종목은 수익 기회가 아니라 조종 세력이 빠져나가기 위해 만든 출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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