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15기에 맞먹는 전력…SKT는 왜 ‘AI 도시’를 만들려 할까

원전 15기에 맞먹는 전력…SKT는 왜 ‘AI 도시’를 만들려 할까
15기가와트(GW). 숫자만 보면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한 기의 발전용량을 대략 1GW 안팎으로 본다면 원전 15기에 맞먹는 규모다. SK텔레콤이 앞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힌 AI 데이터센터의 목표 용량이다. 통신회사가 왜 원전 여러 기의 전력이 필요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일까.

SK텔레콤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단순히 서버가 가득한 건물 몇 채를 짓는 것이 아니다. AI를 학습시키고 서비스하는 거대한 컴퓨팅 시설을 전국 여러 거점에 연결하고, 해외 빅테크의 AI 수요까지 한국으로 끌어오겠다는 구상에 가깝다. 데이터센터가 하나의 건물이라면, 15GW 계획은 전력과 반도체, 통신망, 냉각시설, 자본이 결합된 거대한 산업지대를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먼저 숫자부터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SK텔레콤이 당장 15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착공한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15GW는 글로벌 AI 수요를 겨냥한 중장기 확장 목표다. 우선 2029년부터 전국 주요 거점에 5GW 규모를 단계적으로 공급하고, 실제 시장 수요와 1단계 사업 성과를 확인한 뒤 최대 15GW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15GW 전체가 이미 확정된 투자도 아니고, 필요한 부지와 전력, 고객이 모두 확보된 것도 아니다. AI 시장이 예상대로 성장한다는 전제 아래 제시된 장기 로드맵에 가깝다. 숫자의 크기만 보면 거대한 건설 계획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업은 수요를 확인하며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도 SK텔레콤이 처음부터 15GW라는 숫자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 AI 경쟁의 단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데이터센터 사업에서는 수십 메가와트(MW) 규모도 대형 프로젝트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등장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수만 개의 고성능 GPU를 동시에 가동하는 AI 시설은 기존 데이터센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전력을 소비한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필요한 GPU가 늘고, GPU가 늘수록 전력과 냉각시설도 함께 커진다.

이제 AI 기업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건물을 지을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바로 이 병목을 사업 기회로 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가 AI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지만, 원하는 장소에서 수백MW 또는 GW급 전력을 확보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송전망을 새로 건설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대규모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부지도 제한적이다.

결국 AI 데이터센터 경쟁은 GPU 구매 경쟁에서 전력 확보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SK텔레콤이 2029년부터 5GW를 공급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현실과 연결된다. 데이터센터는 건물만 지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발전시설과 송전망, 변전소, 통신망, 냉각용수, 부지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수GW 규모의 전력을 한 지역에 갑자기 공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SK텔레콤은 전국 거점으로 분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전략의 첫 번째 실험장이 울산이다. SK텔레콤은 AWS와 함께 울산에 대규모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는 이 모델을 장기적으로 1GW급까지 확대하고,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형태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해왔다. 울산이 선택된 이유도 단순하지 않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은 이미 전력과 에너지 인프라가 형성돼 있고, 수도권보다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쉽다. AI 데이터센터가 서울 한복판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전력과 부지가 있는 지역에 컴퓨팅 시설을 두는 편이 경제적일 수 있다.

여기서 SK텔레콤의 계획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더 큰 전략과 만난다. 한국에서는 SK뿐 아니라 GS그룹과 네이버 등도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가 차원의 구상에서는 2028년까지 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초기 550조 원의 투자가 거론됐고, 2035년까지 관련 투자 규모가 1,0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제시됐다. AI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사업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인 셈이다.

왜 한국은 여기에 이렇게 큰 돈을 걸려는 것일까. 한국은 AI 경쟁에서 미국처럼 세계적인 거대언어모델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 않다. 클라우드 시장도 미국 빅테크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AI에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자산에서는 강점이 있다.

반도체와 전력·통신 인프라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가속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핵심 공급자다. 여기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까지 국내에 들어온다면 반도체 생산에서 AI 연산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이 AI 모델 경쟁에서 미국을 따라가는 대신, 세계 AI가 돌아가는 물리적 기반을 공급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SK텔레콤의 역할도 여기서 달라진다. 통신회사의 전통적인 사업은 가입자를 확보하고 통신요금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스마트폰 보급이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통신사업만으로 큰 성장을 만들기는 어렵다. 반면 AI 시대에는 통신회사가 오랫동안 구축해온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이 새로운 자산이 될 수 있다. SK텔레콤이 원하는 것은 AI 서비스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가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인프라를 장악하는 것이다. 도로를 이용하는 자동차가 어떤 브랜드인지와 관계없이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면, AI 데이터센터도 비슷한 사업이 될 수 있다. OpenAI가 성장하든, 새로운 AI 기업이 등장하든, 연산 수요가 늘어나는 한 데이터센터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전력이다. 15GW는 단순히 원전 15기의 발전용량과 비슷하다는 비유로 끝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공장이 주문이 없을 때 생산라인을 멈추듯 쉽게 전력 사용을 중단할 수 없다. 수많은 서버와 냉각장치가 24시간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게다가 발전소의 설비용량 15GW와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 15GW를 단순히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발전소는 정비와 가동률을 고려해야 하고,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실제로 15GW의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그보다 더 복잡한 발전·송전·예비전력 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SK그룹이 AI 데이터센터와 동시에 에너지 사업을 확대하는 움직임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SK는 글로벌 투자회사 KKR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의 재생에너지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초기 1.7GW 규모의 발전자산으로 출발해 장기적으로 10GW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K 측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주요 배경으로 제시했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회사와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가 같은 그룹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SK의 그림은 더 선명해진다.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를 만들고, SK텔레콤이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에너지 계열과 투자 플랫폼이 전력을 공급하는 구조다. AI 산업의 한 부분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컴퓨팅, 통신망, 에너지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이 크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위험은 수요다. 현재 세계는 AI 인프라 부족을 걱정하고 있지만, 2029년과 2035년에도 같은 상황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AI 모델의 효율이 급격히 개선돼 같은 성능을 훨씬 적은 전력으로 구현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자체 데이터센터 대신 기존 클라우드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세계 각국이 동시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면 공급 과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대규모 반도체·AI 투자 계획이 발표됐을 때 시장에서는 미래의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시선도 나왔다.

또 하나는 자금이다. 5GW, 15GW급 AI 데이터센터는 한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SK텔레콤도 글로벌 기술기업과 인프라 투자자, 금융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울산 AI 데이터센터 역시 외부 자본 참여가 추진되고 있다. 이것은 SK가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이지만, 동시에 15GW 계획이 SK텔레콤의 단독 확정 투자로 해석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SK텔레콤의 15GW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는 15가 아닐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2029년부터 시작되는 첫 5GW다. 실제 글로벌 고객이 들어오는가. 필요한 전력을 제때 확보할 수 있는가. 수도권 밖의 지역이 세계적인 AI 인프라 거점이 될 수 있는가. 막대한 건설비를 감당하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15GW는 거대한 청사진으로 남는다.

반대로 첫 5GW가 성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은 더 이상 반도체를 만들어 해외 AI 기업에 판매하는 국가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세계의 AI 모델이 한국에서 학습되고, 한국의 데이터센터에서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반도체와 에너지를 사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SK텔레콤이 만들려는 것은 데이터센터 몇 채가 아니다. 전력과 반도체, 통신망과 자본이 모여 AI를 생산하는 새로운 산업도시에 가깝다.

원전 15기에 맞먹는다는 숫자는 분명 거대하다. 그러나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다. 누가 그 전기를 만들고, 누가 그 돈을 대며, 누가 그 컴퓨팅 자원을 사용할 것인가. 그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15GW는 발표가 아니라 산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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