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신한금융이 원화 대신 ‘달러 코인’ 연합을 택한 이유

삼성전자와 신한금융그룹이 최근 나란히 이름을 올린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블랙록, 구글, 스트라이프, 비자, 마스터카드가 주도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연합 ‘오픈스탠더드’다. 한화생명, KB국민카드, 현대카드, 케이뱅크까지 국내 기업만 13곳이 이 명단에 합류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아직 시작도 못 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왜 국내 대기업들이 원화가 아닌 달러 코인 쪽으로 먼저 움직였는지 이해하려면 국내 제도 상황을 먼저 봐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몇 년째 논의만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초기에는 은행이 지분 과반을 갖는 컨소시엄 방식으로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 표시 코인을 은행에만 허용할지 비은행까지 열어줄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다 보니 논의가 길어지고, 관련 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시점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국경 간 결제, 정산, 자금 이동에서 이미 달러 기반 코인이 표준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원화 코인이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는 사이, 결제·금융 인프라를 다루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움직이고 있는 시장에 자리를 잡아두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국내 은행권이 준비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과 별개로, 삼성전자 같은 비금융 대기업까지 해외 연합에 참여한 점이 이번 사안을 더 눈에 띄게 만든다.

돈의 흐름으로 보면 그림은 더 뚜렷하다. 오픈스탠더드 참여 기업들은 코인 발행 자체보다 준비자산 운용 수익을 참여 기업들과 나누는 구조에 주목했다. 기존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준비금 운용 수익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모델은 네트워크에 참여한 기업들이 그 수익을 함께 가져간다. 결제망을 먼저 깔아두면 향후 실제 거래가 늘어날 때 그 수익 구조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 흐름이 국내 소비자와 무관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해외 송금이나 카드 결제망에 달러 코인 인프라가 먼저 자리를 잡으면, 정작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나왔을 때는 이미 굳어진 결제 관행을 바꾸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관련 업계에서는 원화 코인 제도화가 더 늦어질수록 달러 코인의 영향력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결제·금융 산업의 주도권 문제와 직결되는 이유다.

다만 이 참여가 곧 달러 코인으로의 전면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은 국내에서는 은행 중심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논의에도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다. 국내외 두 트랙에 동시에 대비하는 전략에 가깝다. 원화 제도가 늦어지는 동안 손 놓고 기다리기보다, 이미 열려 있는 해외 인프라에 먼저 올라타 실익을 챙기겠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은행 중심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의 국회 입법이 실제로 언제 마무리되는지, 다른 하나는 오픈스탠더드 같은 해외 연합의 국내 결제 인프라 침투 속도다. 원화 코인 입법이 늦어질수록 국내 기업들의 해외 연합 의존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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